❧ 웨스트민스터 장면(4막 1장)
웨스트민스터에서 리처드는 자신의 왕위를 직접 정당화할 힘조차 없다. 다른 사람이 그를 대변하면서 신이 세운 국왕이라는 심상을 설명하게 될 텐데, 아주 적절하게도 그 사람은 주교다. 다가올 공포와 잉글랜드의 골고타에 대해 예언함으로써 성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도 주교다.
“무질서, 공포, 두려움, 그리고 폭동이
이곳에 거주할 것이고, 이 나라 영토는 불릴 것이오,
골고다와 죽은 자 해골들의 벌판으로.”(⟪리처드 2세⟫, 4.1.142-144)
❧ 자신의 왕위를 무화하는 리처드
신이 기름 부은 자이며 지워지지 않는 특성(character indelibilis)을 지닌 국왕에게는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었기 때문에, 국왕 리처드는 자기 왕위를 박탈하는 의례의 집전자가 된다. 그는 자신의 정치체로부터 위엄의 상징을 하나씩 박탈하고, 관객의 눈앞에 자신의 가련한 자연체를 내보인다.
“이제 날 잘 보시오 내가 어떻게 날 무화하는지.
내가 이 무거운 것을 내 머리에서 벗어 주노라,
[볼링브루크가 왕관을 받는다]
그리고 다루기 힘든 이 왕홀을 내 손에서 벗어 주노라,
[볼링브루크가 왕홀을 받는다]
왕으로서 지배하던 긍지를 내 마음에서 벗어 주노라.
내 자신의 눈물로 나는 성유를 씻어 내고,
내 자신의 손으로 나는 내 왕관을 건네주고,
내 자신의 혀로 나는 나의 성스러운 왕권을 부인하고,
내 자신의 숨으로 방면하노라, 온갖 충성의 서약들을.
온갖 광휘와 위엄을 결단코 나는 그만두노라.”(⟪리처드 2세⟫, 4.1.203-211)